람썬 봉기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남산 봉기 藍山起義 | ||
시기 | 1418년 ~ 1427년 | |
장소 | 베트남 전역 | |
원인 | 명나라의 대월 지배 | |
교전국 | ||
지휘관 | ||
병력 | 수 천명 | 약 10만 명 |
피해 | 피해 규모 불명 | 피해 규모 불명 |
결과 | 여리 세력의 대승, 대월의 독립. | |
영향 | 대월 재건 | |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2.1. 전개 [편집]
2.2. 항쟁 시기 [편집]
명나라의 가혹한 세금과 착취, 강제 동화 정책, 무자비한 학살로 베트남인들은 참다못해 폭발하기 시작했고 교지엔 수많은 폭동이 일어났다. 대부분은 진압되었으나 단 하나, 1418년 2월 7일 지방의 호족 출신이였던 레러이가 평정왕(平定王)을 자칭하고 모든 반명 폭도들을 결집하고 명과의 대전쟁을 선언한다.
레러이 세력은 처음에는 전면전으로 싸웠으나 명군의 반격으로 참패하여 결국 게릴라로 명군과 맞섰다. 당시 명군은 레러이 세력보다 수와 질적으로 압도적이였기에 베트남의 습한 기후, 상대적으로 해박한 지리 정보로 맞서는게 효율적이였기 때문이다. 낙수로 유인해 복병으로 명군을 물리친게 첫 승리였고 영산(靈山), 남산을 거점으로 명군과 대치했다. 이후 예안에 주둔하던 명군을 격퇴하고 서서히 대월 고토를 수복해갔으며 결정적으로 1426년 똣동-쭉동 전투에서 승리하여 왕통에게 조서를 받고 멸망한 쩐 왕조의 후예로 추정되는 쩐까오를 황제로 세워 명나라에게 책봉을 요구한다. 명은 결국 교지를 포기하고 쩐까오를 안남국왕에 정식 책봉함으로써 남산봉기는 종결되었다.
레러이 세력은 처음에는 전면전으로 싸웠으나 명군의 반격으로 참패하여 결국 게릴라로 명군과 맞섰다. 당시 명군은 레러이 세력보다 수와 질적으로 압도적이였기에 베트남의 습한 기후, 상대적으로 해박한 지리 정보로 맞서는게 효율적이였기 때문이다. 낙수로 유인해 복병으로 명군을 물리친게 첫 승리였고 영산(靈山), 남산을 거점으로 명군과 대치했다. 이후 예안에 주둔하던 명군을 격퇴하고 서서히 대월 고토를 수복해갔으며 결정적으로 1426년 똣동-쭉동 전투에서 승리하여 왕통에게 조서를 받고 멸망한 쩐 왕조의 후예로 추정되는 쩐까오를 황제로 세워 명나라에게 책봉을 요구한다. 명은 결국 교지를 포기하고 쩐까오를 안남국왕에 정식 책봉함으로써 남산봉기는 종결되었다.
3. 참고 항목 [편집]
4. 관련 항목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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